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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신랑신부, 생일, 도시 위에의 작품을 만든 마르크 샤갈의 화가와 작품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마르크 샤갈
마르크 샤갈

낭만적인 작품세계. 마르크 샤갈

샤갈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이자 판화가이며 샤갈의 작품 주제는 중력의 법칙을 벗어난 영원의 사랑이다.
샤갈에 있어서는 인간이나 동물들, 특히 연인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데 이것은 사랑의 신화를 표현한 것으로 매우 신선하고 강렬한 색채로 작품을 제작했다.
또한 판화에도 큰 재능을 보였고 성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걸작 동판화를 남겼다.
그의 작품은 러시아계 유대인의 혈통에 흐르는, 대지의 소박한 시정을 담은 동화적이고 자유로우며 환상적인 특색을 보이고 있다. 그는 작품에서 농부,산양,닭과 같은 제재를 많이 취급했다.


1887년 마르크 샤갈은 러시아의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9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6년에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예술의 중심지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는 많은 유명한 예술학교들이 있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통행증이 없으면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기에, 그는 가까스로 친구에게서 임시통행증을 얻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샤갈은 2년 동안 공부하며 자연주의적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샤갈과 벨라



샤갈도 1910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머물렀는데, 종종 들렸던 고향 근처의 비텝스크에서 '벨라 로젠벨트'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샤갈은 "나의 삶"이라는 글에서 그녀와의 첫만남을 다음과 같이 썼다.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1910년에 샤갈은 미술을 배우러 파리로 넘어갔다. 그때의 파리에서는 입체파가 지배적이었고, 여전히 19세기풍의 그림이 유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샤갈은 이미 러시아에서 색채 재능과 신선하고 대담한 반응, 시에 대한 느낌, 입체파와는 상반되는 예술 철학에 주류에서 벗어나 다른 예술가들이 아닌 당대의 시인들에 비추어 평가받았고, 다른 아방가르드 유명 인사들과 교류했다..

그는 여유 시간이 있으면 루브르 박물관에서 마티스, 폴 고갱, 쿠르베, 밀레, 렘브란트, 르넹 형제, 샤르댕, 반 고흐, 피사로, 마네, 모네 등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공부했다.
샤갈은 파리지앵으로 숨쉬는 것을 행복해 했다. 그렇게 그는 파리에서 예술가로서의 꿈을 이룰수 있게되었지만 도시의 외로움과 언어장벽에 괴로워하게된다.
러시아로 돌아갈 계획까지 생각했으며, 그림을 그리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그리움, 유대인으로서의 삶과 가족 그리고 특히 그의 사랑 '벨라'를 그리워했다.

그러던 당시 그는 베를린에 있는 유명한 예술 딜러의 작품 전시 초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한다.
1913년 9월 베를린에서 개인전시회를 열었고 《내 약혼녀에게》, 《골고다》, 《러시아, 암소 그리고 다른 것들에게》를 전시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14년 6월 허바스 발덴 슈트름 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며 화가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된다.
대단히 성공적인 전시였고, 독일 평론가들은 그에 대해 호평했다.

샤갈과 벨라2



전시회 이후 1914년 러시아로 돌아가 벨라와 결혼을 위해 비텝스크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몇 주 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러시아의 국경이 봉쇄되어 버린다. 1915년 벨라와 결혼을 하고, 그해 첫 딸 이다를 가진다.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생활에서 샤갈의 정신은 대단히 안정되었다. 저 당시의 그림에는 몽환적인 젊은 연인들을 화폭에 담고 있다.

1917년의 10월 혁명은 역시 예술가로서 위험한 시기였다. 소련이 세워진 1922년에 그는 고향을 포기하고 벨라와 함께 파리로 넘어갔다.
그때 그는 야수파의 색채를 자기 나름대로 이용하여 아름답고 아담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선명한 색채와 사람과 동물을 섞은 환상적이며 신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39년, 샤갈은 카네기 상을 수상하고 2년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가게된다. 1944년 그의 아내 벨라가 세상을 떠나게되고 그 후 몇 달 동안 그는 작품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그의 새로 작품 활동시작은 그는 아내를 회고하는 작품이다.

 



그는 1947년에 프랑스로 돌아와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명작을 계속 그렸다. 1952년엔 '발렌티나 바바 브로드스키'와 결혼을 하게 된다. 샤갈은 그녀와 그리스 여행을 다니면서 다시 활력을 찾는다.
그렇게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샤갈은 1960년 에라스무스 상을 수상했다. 1966년 샤갈은 17점 연작 《성경의 메시지》를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으며 1985년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무덤은 이후 주변 생 폴의 유대인 묘지에 묻혔다.

마르크 샤갈의 작품에는 히브리 자음과 라틴 모음을 섞어서 שAגAל로 적은 서명을 볼 수 있으며, 그는 흑백의 세로 줄무늬가 들어간 죄수복같은 옷들을 즐겨 입었는데 이는 마치 수용소나 유대인구역에서 강제로 입히던 옷과 비슷하다.
샤갈의 회화 작품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판화 작품도 그 못지않게 많으며, 노년에는 도자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는 거의 100세까지 장수한 화가로, 대표적인 미술가인 파블로 피카소보다 오래 살았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샤갈의 두작품인데, 두 작품들만 봐도 그의 작품의 특성을 파악할수있을것이다. 사랑과 기쁨의 감정들을 아름다운 색채와 초현실주의적으로 풀어낸 작품들.
다른 샤갈의 작품들을 더 찾아 보시길 추천드린다.

에펠탑의 신랑신부
생일
도시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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