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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화가 인간의 진실성과 선함을 표현하는 따듯한 화가

 

박수근 화가
박수근 화가


서민화가, 민족화가 , 민중화가로 알려져있는 박수근 화가는 인간의 따듯함과 진실성을 그려낸 화가입니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며 본인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었습니다.
박수근 화가는 단순화된 선과 구도를 이용해 토속적인 미를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화강암의 질감을 연상시키는 화풍이 특징입니다.
붓과 나이프를 이용해 물감을 층을 고착시켜 만들어낸 이러한 질감은 만들어냈고 굵고 우직한 선으로 단순화시킨 작품들은 한국적인 정서를 잘 나타냈습니다.
박수근 화가의 작품들은 반 고흐의 경우처럼 사후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65년,1970년에 열린 유작전을 계기로 유화로서 가장 한국적인 독창성을 보여준 화가로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난의 악조건 속에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내고, 어떠한 시류나 유파에 흔들리지않고 미술에만 전념했던 박수근 화가는 진정한 예술가로 기억될것입니다.




일제 감정기와 전쟁에서도 피어낸 예술성

 

앉아있는 여인
앉아있는 여인



박수근 화가의 삶과 작품성을 들여다볼때는 그가 살아온 시대를 알아야합니다. 박수근 화가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으며, 해방이후 분단의 아픔과 6.25전쟁의 소용돌이를 거쳤습니다.
그는 가난과 외로움속에서 힘든 화가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나라는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국민들은 먹고살기위한 생존경쟁을 벌였습니다.
박수근 화가는 이러한 상황들을 애정 어린 눈길로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가난과 고통으로 덮힌 삶이 아닌 소박한 일상과 정이 서린 정감가는 모습으로 담아냈습니다.
생전 평범한 화가로서 본인 역시 가난과 외로움에 힘들어했지만 본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그려냈던 당시 삶의 정경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값진 유산이 될것입니다.
1950-1960년대의 시대상을 따듯하게 담아낸 박수근 화가는 한국의 밀레를 꿈꿨다고 합니다.
1963년 학생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수근 화가는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길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그림 공부를 게을리하지않았다" 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 밀레는 '농부 화가'로 불릴 정도로 농촌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을 많이 그렸습니다.
어린시절 박수근 화가는 밀레의 '만종'을 보고 본인도 종교적 심성을가지고 인간을 사랑했던 밀레같은 따듯한 화가가 되길 바랬으며, 박수근 화가의 바램대로 그의 따듯한 마음으로 그려낸 그림들은 많은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전성기에 생을 마감하게된 박수근 화가

 

박수근 화가의 예술적 전성기는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던 1959부터 1962년까지로 볼수있습니다.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그의 작품활동은 가장 왕성했고, 표현기법이나 주제의 깊이 또한 가장 성숙했던 시기였습니다.
그의 화풍의 특징인 화강암 같은 질감 역시 최고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박수근 화가의 전성기로 불리는 기간을 너무 짧았습니다. 더욱 작품에 전념할 시기에 병마를 겪게되었고, 백내장으로 인한 왼쪽눈은 실명에 이르게됩니다.
그 당시 한쪽 눈으로 그림을 그려야했던 악조건 속에서도 그려낸 '할아버지와 손자'라는 작품이 박수근 화가의 생전 마지막 출품작입니다. 신장염과 간염등 점점 병이 악화되었고 1965년 생을 마쳤습니다.
박수근 화가의 따듯한 심성으로 그려낸 작품들은 한 시대를 기록했던 작품으로서도 엄청난 가치가 있지만 우리의 정서가 담긴 향토적인 작품으로서 한국 미술계에 오래도록 기억 될 것입니다.


 


박수근 화가의 대표작

 

 

박수근 빨래터
빨래터

<빨래터>

박수근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와 손자

<할아버지와 손자>

박수근 노인과 소녀
노인과 소녀

<노인과 소녀>

박수근 귀로
귀로


<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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