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앙드레 드랭 강렬한 색채와 형태로 야수주의를 만들다.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은 20세기 초기 활동한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 삽화가이며, 야수주의나 야수주의의 전통에 속하는 작품들로 유명합니다.
드랭은 앙리 마티스와 함께 색채의 강조와 대담하고 생동감넘치는 작품들로 야수파 운동을 이끈 중요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드랭은 1880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예술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에 야수파 화가의 창시자중 한명인 앙리 마티스와 함께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야수주의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그들의 혁신적인 작품들을 보고 비평가들은 "les Fauves"(야수)라고 조소적으로 불렀고, 이것이 야수파 운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앙드레 드랭의 활동 초기에는 야수주의 양식의 풍경화로 유명세를 탔으나, 끊임없이 새로운 양식적 발전을 모색했습니다.
특히 초기 작품에는 입체주의 미술뿐 아니라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도 드러나 있습니다. 화풍의 변화를 두려워하지않은 드랭은 입체파 작품들도 남겼습니다.
그러나 1921년부터 앙드레 드랭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양식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앙리 마티스와는 다른 길을 걷게되는 부분입니다.
앙드레 드랭은 주로 자연에서 가져온 주제와 풍경, 도시 풍경, 인물 등을 그린 작품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선명한 색채와 화려한 조각감으로 특징 지어지며, 대담하고 강렬한 붓질과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앙드레 드랭은 큰 성공을 거둔 화가가 됩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드랭에게 여러 재앙들이 닥쳐왔습니다.
나치에 선전활동에 협조한 혐의, 두 명의 사생아 아들의 출생, 그리고 이혼, 이 사건들이 앙드레 드랭을 최악의 상황으로 이끌었습니다.
언제나 자신만만해했던 그는 자기 회의에 빠진 은둔자가 되었고, 이후 드랭은 화물차에 치여 1954년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드랭은 20세기 초기 프랑스 예술의 중요 인물로서, 색채와 형태에 대한 집중과 표현의 자유를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앙드레 드랭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나뉘어지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만은 현대 미술의 발전과 다양성을 위한 기반이 되었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앙드레 드랭의 대표작품

 

 

템즈강의 다리



빅벤





콜리우리 항구의 배들

 

3작품 모두 초기 야수파 화풍의 앙드레 드랭의 작품들입니다. 이때의 드랭 작품들이 가장 사랑을 받고있습니다.

반응형